써미 2025-10-28 10:00
감시대상자 조사보고서



본문총을 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뼈와 살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액션 영화에 으레 나오는 것처럼 부러트리거나 어디 한 군데 구멍이라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것을 이것은 우습게 뚫고 지나간다. 방아쇠를 당기면 쉬이 사람의 생명까지도 앗아갈 만한 무기이자 양지에서는 금지된 도구. 전쟁의 잔재. H력 이래로 거진 근절되었을 터인 것이 어째서 여기에 존재하며 야마다 이치로의 손 위로 떨어졌는지, 본인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곳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케부쿠로 디비전의 지분은 거의 이 ‘천국으로의 계단’과 ‘Mad Comic Dialogue’ 두 곳이 반반씩 나누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이 조직의 보스, 시토 모즈쿠는 뱀 같은 남자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내밀며 모즈쿠가 다리를 꼬았다.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손바닥과 손가락에 감긴다. 그것의 원래 질량보다도 훨씬 무겁게 느껴진 탓에, 이치로는 왼손으로 오른손 아래를 둘러 쥐었다. 자칫 놓칠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못 하겠습니까? 하고 빙글빙글 웃는 얼굴을 총신으로 날려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야마다 이치로는 고개를 들었다.



“…사람을 죽이라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살짝, 위협만 하라는 거지요.”
“그런 거라면 그냥 마이크로….”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자네의 재능이 출중하다는 건 알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말이죠.”



센스가 있어요, 이치로 군은. 당장 무엇을 선택해야 더 좋을지 본능적으로 안단 말입니다. 싸울 때든 무언가를 저울에 올릴 때든…. 중얼거리며 두꺼운 시가에 담뱃불을 붙이는 얼굴 위로 연기가 번져 흐려진다. 그 표정을 살피기 어려워 응시하고 있자 이내 모즈쿠가 손을 들어 이치로가 쥔 총을 가리켰다.



“그 총, 얼마에 구했다고 생각하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백만 엔 정도입니다. 상태가 꽤 좋은 것으로 구하려다 보니.”
“백, …!”



헛숨을 삼키다 사레가 들려 기침하자 매끄러운 물병이 앞에 놓인다. 삼 년 밤낮을 아침이슬만 모아 만든 게 아니고서야 사만 엔을 호가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그 브랜드였다. 이치로가 손사래를 치며 테이블 위에 총을 내려두었다. 식은땀이 배어나온 탓에 표면이 아주 조금 미끄러워진 상태였다. 비싼 거야 당연할 테지만 저 작은 것 하나에 백만 엔이라니.



“자네니까 맡기는 겁니다.”
“금액을 들으니까 부담스러워지는데요.”
“아니요, 자네만큼의 적임자는 없어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맙시다.”
“혹시라도 어디 망가지기라도 하면….”
“마이크는 정신에 간섭하는 물건이죠. 하지만 마이크를 꺼내기 전에 그 손을, 입을 열기도 전에 목을 뚫는다면 어떨까요.”



시가를 끼워 둔 검지와 중지를 세워 총 모양을 만들고 가볍게 위로 치켜세운다. 총성 대신 위스키 잔 안에서 얼음끼리 녹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무서움을 알기 때문에 빌어먹을 여자들이 무기를 금지한 겁니다. 내리깔리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인다. 정작 본인도 그 여자들이 깔아 둔 판 위에서 땅따먹기에 누구보다도 혈안이 되어 있는 주제에, 라는 생각을 굳이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혹시 상대는, 그 Mad Comic Dialogue 쪽입니까?”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지금 맡기려는 건은 그쪽에 빌붙고 싶어하는 군소 조직을 치려는 거죠. 거기까지 먹는다면 좀 귀찮아질 테니까.”



직접 칠 것도 물론 준비야 하고 있지만. 불만족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는 꼴이 곧 신경증을 낼 것 같아 이치로는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그러나 앞에 놓인 재떨이를 집어던지는 대신 시가를 깊게 빨아들이고 끝내는 게, 아무래도 마이크 외의 실존하는 무기를 구한 게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아무튼, 자네는 언제나처럼 쿠코와 함께 날뛰었다가 상황을 봐서 보스 쪽으로 흘러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건물 안에 비밀 벙커가 있다는데, 방음도 되어 있고 퍽 좁은 개인실인 모양이에요. 그 보스는 쥐새끼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이고. 이쪽에 붙든, 알아서 와해하든 MCD 산하로 들어가지만 않는 걸로 일러 두는 걸로 하죠.”
“벙커라면 외부 습격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는 것 아님까?”
“그걸 대비해서 총이 필요한 거죠. 직접 전쟁을 겪은 세대라면 그 무기의 위력을 알 테니… 열쇠구멍에 대고 한 발, 쏘기만 하면 될 겁니다.”
“그 너머에 사람이…, 있다면요.”
“뭐, 최악의 가정으로 그렇게 된다고 한들 내가 우리 조직의 인재를 살인자로 만들겠나요.”



이치로가 바짝 굳었다. 이 일을 하며 이런저런 더러운 꼴을 봤다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경우가 달랐다. 마이크는 정신을 좀먹을지언정 아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살인은, 뒤가 아예 없는 짓이다…. 분명 위협용이라고 하셨잖아요, 버석거리는 입술 새로 겨우 내뱉자 모즈쿠가 폭소하며 위스키를 들이켰다.



“하하, 자네가 그렇게 긴장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네요!”
“모즈쿠 씨, 저는…….”
“의심도 많고 걱정도 많은 인물이 열쇠구멍에 눈을 대고 있을 리도 없고…, 아무리 만능 같아 보이는 무기라도 열쇠구멍을 뚫은 총알이 사람 몸까지 뚫는 경우는 좀처럼 없어요. 그러니까 이치로 군.”
“…네.”
“이번 건은 아주 비싼 의뢰가 될 겁니다.”



자네, 돈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남자가 속삭였다. 이치로는 이내 입을 다물었고 이를 모종의 동의라고 처리한 시토 모즈쿠가 부하를 시켜 이치로에게 총을 잡는 자세부터 장전하는 방법, 방아쇠를 당길 때 몸의 충격을 줄이는 요령까지 가르치라 이르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소싯적에 총질을 좀 했다는 중년의 남자는 이 귀하고 좋은 걸 이런 애송이에게 쥐여 준다며 궁시렁거렸으나 이치로는 별 말 없이 주워 삼켰고, 각각의 사이클을 열 번씩 돌았다.

장전, 조준, 호흡을 멈추고 격발.
진짜 총알이 아닌데도 탄환이 날아가 박히는 소리는 귀마개를 넘어 고막을 때렸고 화약 냄새는 화마와 비슷했다. 툴툴거리던 남자는 이치로가 두어 번쯤 총을 쏘자 입을 다물고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다리 더 벌리고, 어깨는 조금 더 펴고. 아니 아니 몸이 기울었으니까 일직선으로. 따위의 실질적인 충고를 던지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도 쏠 수 있는 컴팩트한 총이라더니 사람을 죽이는 물건의 반동은 과연 대단해서, 열 발을 다 쏘자 어깨가 뻐근하게 저렸다.



“이만하면 됐다.”
“아…. 넵.”



귀마개를 벗고 총을 내려두는 이치로를 보며 남자가 한 마디를 더했다. 너, 재능이 있네. 자세가 흔들림이 거의 없잖아. 원래 처음 쏘는 사람은 과녁 근처에도 못 가는데…. 이치로가 대답 없이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데에 재능이 있어서 무엇에 쓰냐고 묻고 싶은 표정으로. 이십 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이름 깨나 날렸겠다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말이 명치에 턱 얹혔다.
이치로는 총은 어지간하면 아예 꺼내지 말자고 다짐했다.



*



“어이, 이치로. 어디 안 좋냐?”
“뭐?”
“아까부터 표정이 구리잖아. 뭐 얹힌 것처럼 계속 명치께나 두드리고. 네놈이 쫄았을 리는 없고— 체하기라도 했나.”
“내가?”



그럼 소승이 그랬게. 오늘 뭐 잘못 먹었나, 얼을 어디 뭐 공엄사까지 두고 온 거냐? 핀잔을 주는 얼굴은 언제나처럼 여유롭다. 동생들을 챙겨 빌어먹을 고아원을 나가려고, 돈이 필요해서 더러운 일에 손을 대기 시작한 야마다 이치로와는 달리 하라이 쿠코는 ‘어쩌다 보니’ 여기 끼어 있는 것에 가까웠다. 시토 모즈쿠의 말 따위는 제 알 바 아니고 그 밑에 소속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단다. 제 위에는 부처님뿐이나 아래에는 이끌어갈 중생들을 두었다는 기묘한 놈과, 한 팀이 된 지도 꽤 되었다.

야마다 이치로는 슬그머니 가슴팍을 배회하던 손을 내린다. 짐승같은 면이 있어 그런지 하여간에 촉은 더럽게 좋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제게 숨기는 게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그러나 자켓 안 주머니 속에 든 걸 하라이 쿠코에게 들킬 수는 없었다. 야마다 이치로 선에서 끝내야만 하는 문제다, 이것만큼은.

제법 낡은 컨테이너 단지는 입구부터 먼지 냄새가 매캐했다. 연신 재채기를 하는 파트너에게 부직포 마스크를 건네고 저부터 코 아래로 대충 걸어 둔다. 마스크라는 건 발음할 때 제법 거슬리는 물건이니 바로 구겨 주머니에 처박아 두는 꼴에 새삼스럽게 열이 받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잠금쇠가 풀려 있어서—어쩌다가 멋대로 발사될 위험은 없는지 다시 한 번 표면을 매만져 보고는 이치로가 발을 내뻗었다. 금속 재질이 안주머니 안에서 헛도는 것보다는 운동화 밑창과 바닥이 붙었다 떨어지는 쪽이 훨씬 좋았다.

이쪽이 마이크를 꺼내면 저쪽도 마이크를 꺼낸다. 호흡을 가다듬고 말로서 부딪힌다. 몇 벌스나 되는 리릭을 받아냈지만 몸이 저릿하지조차 않았다. 죄 잔챙이들 뿐이었다. 쉽지 않을 거라더니, 쪽수 외로는 전혀 밀리는 게 없다.

랩으로 되질 않자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쇠파이프를 걷어차며 이치로는 인상을 썼다. 마이크로 싸우기로 했는데 정정당당하지 않게 흘러가는 건 질색이다. 품에 총을 품고 할 법한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서 벙커라는 건 어디 있는 거지. 구조 상 저 안쪽에 있을 것 같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타겟이 일러 준 성격대로라면, 이 정도로 크게 소란을 피웠을 때 도망가든 숨어 있든 할 터였다. 누가 엄호하며 나오는 건 본 적 없으니 틀어박혀 있는 게 맞을 텐데. 때마침 모즈쿠가 붙여 준 백업들이 우르르 뒤쪽으로 붙자, 이치로가 흘긋 쿠코 쪽을 보곤 틈새로 질주했다.



“뭐야, 어디 가!”
“잠깐만! 보스가 따로 시킨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럼 소승도 같이, 우왁! 이 자식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여기 처리 좀 해 줘. 맡긴다!”



날아오는 주먹을 쥐어 꺾는 쿠코가 야 이치로오오오, 하고 뒤에서 외치는 소리를 가볍게 무시하며 이치로는 낡은 벽을 등지고 달렸다. 맡긴다고까지 말했으니 당장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 지체하면 저 성격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위치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겉에서 보는 건물은 직사각이었으나 오른쪽보다는 왼쪽에 창문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그러면 역시 오른쪽이겠지. 쭉 밀고 나아가다 보니 왼쪽보다 배치된 인선이 많은 게 아무래도 제대로 짚은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 컨테이너박스인데 조잡하게도 구불구불한 구조로 만든 복도 끝으로 딱 하나 커다란 문이 놓여 있다. 녹슨 철제 문은 전기톱 같은 자재를 쓰는 게 아니라면 부수지 못할 만큼 단단해 보였다.

모즈쿠의 정보력이 영 못 쓸 만한 건 아닌지 문 사이를 열심히 더듬어 봤지만 과연 틈이라고는 열쇠 구멍 하나뿐이었다. 그조차도 철사 같은 걸 구부려서 딸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닌 듯해, 이치로가 침음을 삼켰다. 총은 쓰기 싫은데. 그렇다고 죽고 싶지도 않고. 귀를 가져다 대도 문 너머는 고요하기만 했다. 내키지 않는 얼굴로 이치로가 확인 차 철문을 통통 두드렸다. 아예 들리지도 않으려나, 아니면 진동 정도는 전달이 되려나.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열쇠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던 그 때, 문이 벌컥 열렸다. 가까스로 몸을 뒤로 빼 이마를 찧지는 않았으나 덜컥 팔이 잡히더니 안으로 중심을 잃고 끌려들어갔다. 그 모든 과정이 갑작스럽고 또 자연스러워 총도 마이크도 꺼내지 못한 채 이치로가 고꾸라졌다. 찰나 기억에 남은 것은 담배와 어쩐지 바다를 연상케 하는 향이 뒤섞여 있었다는 것뿐이다. 향의 주인은 저를 끌어당겨 넘어뜨린 이 남자일 테고.

눌러 쓴 모자 아래로 뺨에 남자의 머리카락이 스쳤다. 정사각의 좁은 방에는 창문이 없었고 수명을 다해 가는 백열등 뿐이라 희끄무레하게 얼굴의 윤곽이 도드라졌다. 처음 든 생각은 무척 미인이라는 것.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하고 다닌 탓에 드디어 지옥에 떨어진 건가 하는 오타쿠적인 망상이 잠깐 스쳤으나, 이내 목이 콱 졸리는 감각에 그 존재가 실재하는 질량임을 깨달았다. 둥그런 구슬로 꿴 팔찌를 차고 있는 손목이 목덜미를 누르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어깻죽지가 잡혔고, 남의 배를 깔고 앉은 폼이 익숙했다. 이 사람은 바깥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 손놀림부터가 치고 박는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자였다.

뭐라도 손에 잡히는 게 있다면 후려칠 요령으로, 이치로가 가까스로 바닥을 긁었다. 그러나 바닥엔 아무것도 없었고 호흡이 가빠진 탓에 부직포 마스크가 점점 입가로 들러붙고 있었다. 머리에 경고등이 울린다.





“누구야, 네놈.”



위압감이 느껴지는,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치로는 바닥을 더듬는 대신 남자의 손목을 타고 올라가 붙잡았다. 숨이 막혀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저 스스로가 결코 완력으로 누군가에게 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남자는 아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힘치고는 얇따란 팔인데도. 이런 게, 겁이 많아서 벙커를 만들어 두고 숨어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이치로는 우선 힘을 풀었다. 빠져나가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할 테니, 당장 반격할 수 없다면 차라리 얕보이는 편이 낫다. 아주 손속이 더러운 작자는 아닌지 몸을 늘어트리자 목덜미를 누르는 힘도 반으로 줄어든다. 호흡하지 못했던 만큼의 공기를 들이키자 당장에 밭은 기침이 터져나왔다. 고였던 눈물이 옆으로 흐르자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아주 조금 더 압력이 느슨해졌다. 동시에 후드를 벗기려는 듯 왼쪽 상체를 짓누르던 손이 떨어진다. 무언가를 하려면 지금이다. 이치로가 허리를 튕기다시피 다리를 들어올려 무릎으로 남자의 옆구리를 찍었다. 컥, 소리와 함께 위로 타고 앉은 자세가 흐트러진다. 분명 제대로 들어갔을 텐데 아주 고꾸라지지 않는 걸 보면 맷집이 좋은 편인 듯했다.

등허리 위에 다리를 감고 왼쪽 손에 힘을 주어 반동으로 몸을 뒤집는다. 남자도 그냥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한쪽 팔로는 바닥을 받치고 곧장 주먹을 내뻗는다. 겨우 피하긴 했으나 손등 끄트머리가 관자놀이에 스친 것뿐인데도 골이 울리는 걸 보니, 제대로 맞았다면 분명 최소 몇 초간은 의식을 잃었을 터였다. 남자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타고 누르며 이치로는 후드를 다시 꾹 눌러 썼다.

공교롭게도 남자가 쓰러진 곳이 백열등 바로 아래라 머리칼 아래 깎인 듯 내지른 이목구비가 아까보다도 잘 보였다. 얼굴만 떼어 놓고 보면 이런 허름한 컨테이너박스와는 죽어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아, 이런 상황에도 순수하게 감탄하게 만드는 외모였다. 이치로가 헐떡거리는 숨을 갈무리하고 남자의 양팔을 잡아 눌렀다. 아까와는 정반대의 자세로 형세가 역전된 꼴인데도 전혀 주눅드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열이 받았으면 더 받았지. 긴 속눈썹 아래로 고집스러운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처럼 번들거렸다. 그에 잠깐 움찔한 이치로가 재차 손속에 힘을 주었으나 안주머니에 잘 갈무리해 두었던 총이 흘러내려 떨어진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래, 총이.

이치로와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바닥을 구르는 총으로 향했다. 뒷목에 소름이 내달렸다. 안 돼, 저건 백만 엔 짜리라고.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이치로가 손을 뻗은 것보다 남자의 반사신경이 간발의 차로 더 빨랐다. 흰 손이 삽시간에 총을 주워들어 이치로의 턱 아래를 겨눈다. 목젖 위로 닿은 총구 끝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이 거리감이라면 따로 조준할 필요도 없이 방아쇠만 당기면 머리가 날아갈 것이다.



“이건 또 뭐야. 총?”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숨이 섞였다. 이 남자가 총을 다루는 법을 아는지 모르는지의 가능성을 점쳐 보던 것도 무색하게, 검지로 격철을 젖혀 철컥 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혹시 이대로 죽는 건가. 닿아 있는 총구 끝을 꾹 밀어 누르며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이치로가 입술을 깨물곤 있는 힘껏 누르고 있던 몸을 물렸다.



“야. 너 몇 살이야.”
“…….”
“대답.”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자 다시금 총구로 턱을 들어올리다시피 밀어낸다. 통성명도 아니고, 이름을 묻는 것도 아니고 웬 나이. 자기도 그렇게 많이 먹은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열일곱 살.”



길게 빠진 눈썹 한쪽이 위로 솟았다. 총구 끝으로 뺨을 눌러 왼쪽, 오른쪽을 품평하듯 살펴보는 데에 짜증이 치밀었다. 후드에 마스크까지 낀 데다 역광이라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애초에 당장에 얼굴부터 확인할 줄 알았더니만. 그렇게 얼마간 더 남의 얼굴을 치대던 와중 동갑? 하는 단어가 어렴풋이 들린 것도 같았다. 누구와 동갑이라는 건지는 몰라도. 설마 본인은 아닐 테고.



“어쩐지 어려 보이더라니.”
“대체….”
“이건 어디서 났고?”



이치로가 다시 입을 다문다.



“아니지, 이 정도 물건을 공수할 만한 건 이제 그쪽 정도뿐이니까…. 너, 모즈쿠 자식이 시켜서 온 거지?”



눈빛이 짧게 흔들린다.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었으나 남자가 확신을 갖기는 충분했다. 그 망할 자식, 죽여버리겠어. 낮고 빠른 목소리가 음울하게 흘렀다. 그에 대고 더 말을 얹는 대신 이치로는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여기 보스야?”
“아? 여기 벙커에 틀어박혀 있었던 쥐새끼 말하는 거면, 저쪽.”



총을 들지 않은 손으로 가리킨 방향은 벙커 구석의 카우치 쪽이었다. 빛이 닿지 않아 어두운 벽에 땅딸막한 남자가 한껏 찌그러진 채 박혀 있었다. 죽은 것 같진 않은데, 아무래도 빠른 시간 안에 일어나지는 못할 성 싶었다. 여태 발견하지 못한 게 용할 정도로 눈앞의 사람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니. 하지만… 어쩌지. 대상에 누군가 먼저 손을 댔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다른 조직이 섞여 있지는 않은 듯했으니 아마 이 남자 혈혈단신으로 저지른 일일 거고. 어째서 경비를 서던 자들이 막아서지 않은 걸까. 목표와 안면이 있던 사람인가?



“죽이려고 했나?”
“아니야. …쏠 생각은 없었어.”
“하긴, 그럴 생각이 있는 놈이었으면 문 밖에서부터 장전해 두고 대기했겠지. 아까도 뒤집을 게 아니라 바로 총을 겨눴으면 될 일인데.”



진의를 재듯 남자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게 어쩐지 긴장이 되어 이치로가 허리를 곧게 폈다.



“일말의 양심은 있다? 아니면 몸 쓰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있든가.”
“마이크를, 쓰고 싶었어. 굳이 쓴다면.”
“허. 배짱 하나는 있는 놈이라 이거지. 그런 녀석은 싫지 않아.”



싫지 않다, 는 표현에 왜인지 뱃속이 간질거렸다. 그 낯선 감정을 제대로 곱씹어 볼 틈도 없이 남자가 캐치를 눌러 장전해 둔 탄창을 빼냈다. 총알 여섯 개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동시에 목을 누르고 있던 압력도 같이 사라진다.

동그랗게 뜬 눈을 마주치며 남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멱살을 잡는 것에 가까운 손길로 자켓을 잡아채서는, 살상력이 사라진 그 총을 손수 도로 안주머니에 넣어주는 것을 뿌리치지 못한 것은 당황의 연장선이었다. 지인이라도 챙기듯 살뜰하게 자켓 위를 털어주는데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 안에서 일어난 일은 바깥까지 들리지 않고, 야마다 이치로 하나쯤 죽어버린다고 한들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총을 쥠으로서 분명한 우위를 쥐고 있었는데,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한 거지.



“어차피 네놈은 대가리가 아니라 써먹고 버리는 패겠지. 그 자식한테 연락해 봤자 꼬리자르기나 할 테고.”



뺀질나게도 협정을 어겨 대는데도 아니라고 우기면 다인 줄 아느냐고, 남자가 가죽 자켓을 털며 일어선다. 무릎을 꿇은 채로 굳은 이치로를 내려다보다 일어서라는 듯 턱짓하곤, 자켓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은 마이크였다.



“그래도 꽤 비싸게 주고 구했을 텐데, 여기서 빼앗기거나 하면 네놈을 뼈째로 죽이려 들지 않겠냐. 애새끼한테 그런 걸 쥐여주는 걸 보니 ‘천국으로의 계단’도 갈 때까지 갔군 싶긴 한데.”
“그래서 돌려주겠다고…? 나한테 다른 총알이 있을 가능성은?”
“하! 쏴 볼 테면 쏴 봐. 그 전에 네놈을 때려눕혀주지.”



어차피 이기는 건 이 몸이다. 오만한 말투로 내뱉고는 마이크를 꽉 쥐는 손 위로 힘줄이 섰다. 질 거라는 가능성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은 표정으로 웃는 얼굴이, 바보 같지만 어쩐지 조금 멋있다고 생각하며 이치로가 눈을 깜빡였다. 머뭇거리며 마이크를 꺼내자 그렇게 나와야지, 하고는 남자가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 사람이 내뱉는 리릭이라면. …이런 목소리로, 이런 말투로, 무슨 랩을 어떤 리듬으로 할까. 분명 바깥의 그저 그런 치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이치로는 직감했다. 심장이 뛰었다.

이치로가 마스크를 끌어내리려던 차에 팽팽해진 공기가 흐트러진 것은 벨소리가 울린 탓이었다. 이런 타이밍에 누구냐며 인상을 찌푸린 남자가 휴대폰 액정을 확인하더니 일순 입매를 굳혔다. 앓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을 귀에 가져가더니 어어, 당연히 기억하지, 누구랑 한 약속인데 그럼, 금방 들어갈게, 응. 이따 봐 네무. 따위의 대사를 끝으로 통화를 끊는다. 꼭 시트콤 같은 상황에 이치로가 맥 빠진 얼굴로 섰다. 네무가 누구지. 연인일까? 남자가 이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
“…….”
“미안한데, 오늘은 안 되겠다.”
“하아?!”
“선약이 있어서.”



순 제멋대로잖아.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담배를 꺼내 입술 사이로 비스듬히 문 다음 담뱃불을 붙이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이치로가 눈을 찌푸렸다. 아까 붙잡혀 끌려들어왔을 때 느꼈던 그 향으로, 독했지만 시토 모즈쿠의 것과는 달랐다. 볼일은 끝났다는 듯 먼저 마이크를 집어넣고는 길쭉한 다리로 옆을 스쳐가는 남자를 붙잡지도, 후려갈기지도 못한 채 문이 열렸다. 아까 이치로가 걷어찬 부분을 손바닥으로 한 번 짚어본 뒤, 문이 닫히기 전에 남자가 생각났다는 듯 돌아본다.



“야, 너.”



대뜸 마스크 위로 훅 연기를 뱉는 통에 이치로가 콜록거린다. 나즈막한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오늘 붙어보지 못한 게 아쉬우면 찾아와.”
“무슨 소릴, …어디로 찾아오라는 건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잖아.”



날 모른다고? 하긴, 그래서 이렇게까지 날뛴 건가. 고개를 기울인 남자가 이치로의 정강이께를 워커 끝으로 툭 두드린다.



“아오히츠기 사마토키. 이름 정도는 들어 봤겠지.”
“뭐…?”
“간다. 그딴 녀석 밑에서 굴러 봤자 같은 쓰레기밖에 안 되니 뭣하면 내가 받아 주지. 랩 실력까지 쓸모 있다면 말이지만.”



그리고는 정말로 문이 닫혔다. 닫힌 문을 들여다보며 이치로는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라는 이름을 입안에서 굴린다. 그런 이름이 도쿄에 둘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Mad Comic Dialogue’의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다. 막연히 인지만 하고 있던 사람을 돌연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 이름을 듣자마자 만만치 않은 상대였음이,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단박에 이해된다. 아무런 경계 없이 이 안에 들어와 있을 수 있던 이유도, 저 사람이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라면 다 설명되었다. 무엇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 사람을 저렇게 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잠깐, 그럼 모즈쿠가 시킨 일 자체는 달성한 것 아닌가? 인과관계를 모른다는 게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이치로는 몸을 가까스로 움직여 기절한 타겟을 들쳐메고 문을 열었다. 그 남자, 사마토키는 이미 떠났는지 바깥은 고요했고 귀가 따갑게 원성을 토하던 하라이 쿠코에게 물어본 바로 다른 사람과 마주친 적은 없다고 했다. 그 짧은 스침 끝으로 남은 것은 묘한 아쉬움이다.

상황이 얼추 정리되고 나서 들은 사정으로는, 타겟은 겉으로는 MCD 쪽에 붙고 싶어하는 것처럼 설설 기면서 뒤로는 다른 짓을 꾸미고 있던 걸 들켰다고 했다. 그러니까 결국 이쪽에서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탄창이 비어 있는 총을 내밀며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라는 이름을 댔더니 언짢아하면서도 납득하는 얼굴이 볼 만했다. 총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 천운이라나. 시기를 앞당겨야겠노라고 시근덕거리는 발치 아래로 재떨이의 조각이 뒹굴었다. 그것을 줍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이치로가 생각한 것은 하나뿐이다.

조만간 만날 수 있다. 랩으로, 부딪힐 수 있다. 그 남자의 전언처럼 MCD의 사무실로 찾아갈 수는 없겠지만. 장난감을 손에 넣었다가 직전에 빼앗긴 아이만큼이나 아쉽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이치로는 우선 승부욕이라고 명명해 두기로 했다.
그래도, 야마다 이치로는 총을 쥐었던 대가로 지갑이 잠깐 두둑해졌고 동생들에게 선물할 운동화와 책을 샀다.



*



일주일 뒤 거리에서 아오히츠기 사마토키와 스쳐지나갔을 때 이치로는 후드를 뒤집어쓸지 말지를 고민했다. 혹시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기저에 깔린 것은 두려움보다도 기대에 가까웠다. 알아볼 리 없고, 오히려 들켰을 경우가 더 큰일인데도. 그렇다면 그 마음은 무엇이라고 이름붙이면 좋은가. 이것도 승부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얇은 머리칼이 흐릿한 백열등 아래가 아니라 햇빛 아래서 반짝였고 꼭 같은 담배 향이 공기 중에 흩어지자 가슴이 꽉 조여드는 것이 영 상태가 이상했다. 목격자가 없으니 벙커 안에서 뒹군 것이 꿈 같았다. 아오히츠기 사마토키 본인도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고. 옆구리에 멍이나 남았을까. 조금 더 세게 후려쳤으면 어땠을까. 목에 희미하게 남은 팔찌 자국을 손으로 더듬었으나 그의 시선이 닿는 일은 없었고 이치로는 다시 아쉬워졌다.

차라리 얼른 붙어 보고 싶다. 그래서 술렁이는 마음을 잠재울 수만 있다면.
야마다 이치로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선다.





—그 뒤로 야마다 이치로와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팀을 합치고,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아메무라 라무다로 인해 사이가 깨어진 것은 공공연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야마다 이치로 쪽이 아오히츠기 사마토키에게 먼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후략)
※극비※ 중왕구, 감시대상자 조사보고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