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걸려온 전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서 없이, 사전 설명도 없이, 꽤나 다급한 목소리로. 네, 요로즈야 야마다입니다 하는 말을 주워삼키며 이치로가 눈을 깜빡였다. 야마다 이치로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다. 요코하마라는 키워드까지 더해지면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분명 발신자는 이루마 쥬토, 요코하마 디비전의 두 번째 멤버다. 그리고 이 남자가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를 거치지 않고 이쪽으로 전화를 걸어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전화 너머 상대방이 부연 설명을 하기를 조금 더 기다리던 이치로가 결국 먼저 운을 떼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루마 씨? 무슨 일이신가요.”
“아. 대뜸 미안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사마토키 일로 전화했는데….”
그야 그렇겠지 싶기도, 의외인 것 같기도 한 것은 둘의 사이가 철천지 원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같은 팀이었던 아오히츠기 사마토키와 모종의 일로 사이가 틀어진 지도 벌써 이 년이 넘었다. 야마다 이치로는 이케부쿠로에서,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는 요코하마에서. 가까운 듯 먼 거리는 옆 동네 놀러가듯 쉬이 오갈 수 있을 만한 거리는 아니었으며 어쩌다 털끝이라도 마주치면 드잡이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이다. 당최 뭣 때문에 요코하마까지 걸음을 시킬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 사람이.
“사마토키가 이치로 군을 아주 간절하게 찾아서요.”
“네?”
왼손으로 빙빙 돌리고 있던 볼펜이 툭 떨어져 바닥으로 굴렀다. 그것을 주울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이어지는 말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정확히는 당신뿐만이 아니라 아메무라 씨와 진구지 씨도 찾고 있지만, 그 둘은 당장은 시간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왜요?”
“위법 마이크에 당했습니다. 롤백Roll Back됐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더티독 시절로요.”
더티독이라니. 혀끝에 쓰게 걸리는 이름은 과거의 영광이요 다 지난 이야기의 편린이었다. 이치로가 와작 인상을 구겼다.
“그게 대체….”
“지금 여기 있는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는 Mad Trigger Crew의 리더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조바심이 나 보이는 목소리 너머로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이치로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의자가 굴러가 뒤로 부딪히고 묵직한 책상이 앞으로 드륵 밀렸다. 롤백이라고. 사부로가 이따금 서버를 롤백해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적 있다. 어떤 상태로, 어떤 시점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무리 위법 마이크인들, 그것이 가능한지는 둘째치고라도 그 이루마 쥬토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저울에 놓인 것이 요코하마의 리더라면.
목소리가 지나치게 단호해서인지, 이루마 쥬토가 얼마간 입을 다물다가 고맙다며 전화를 끊는다. 이치로가 캘린더를 확인하며 차키를 챙겼다. 단골 손님의 시덥지 않은 부탁이라 눙치려면 눙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두어 시간 후에 잡힌 일정이 있기는 했다. 이케부쿠로에서 요코하마까지, 풀로 밟으면 왕복 한 시간 이십 분 정도다. 그러면 남은 사십 분 동안 어떻게든.
…어떻게든, 뭘 하겠다는 말이지.
사마토키가 걷는 길이고 야쿠자들이 걷는 평평한 돌 위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이치로는 모른다. 2년 전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무슨 사연으로 야쿠자가 되었는지조차 모르는 까닭이다. 중간중간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남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느껴졌으나 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자 가옥의 장지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이루마 쥬토다. 야쿠자와 경찰과 군인, 조합이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야쿠자의 본가 안쪽에서 등장하는 경찰을 직접 보고 있자니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숨길 수 없는 피로가 묻어나는 얼굴을 응시하자 이제부터는 제가 안내하죠, 하고 조직원을 물리고 이치로에게 턱짓했다. 통로는 넓고 반질반질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조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충분히 듣는 귀가 멀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쥬토가 입을 연다.
“이렇게 바로 와 줄 줄이야. 감사 인사를 먼저 드려야겠군요.”
“아니요…. 딱히 감사받으려고 온 건 아니라서요. 무슨 일임까, 그래서?”
“뭐, 늘상 있는 일이죠. 항구에서 약을 밀항하던 놈들을 잡는 과정에, 그쪽이 위법 마이크를 작동시켰는데 아무 일이 없더라니 뒤늦게 열이 오른다나 뭐라나. 환절기라고 감기 같은 걸 걸리는 체질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추임새를 넣자 쥬토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의식도 또렷하고 열감이나 피로 말고는 별 증상이 없길래 그냥 최근 무리한 탓인가 했죠. 본인도 말짱하다고 했고…. 조직원들 말로는 감기약 먹고 소파에 늘어져서 자더니 깨니까 그런 꼴이라더군요.”
“그런 꼴…?”
구불구불한 복도 끝으로 쥬토가 문득 발을 멈춘다. 묵직해 보이는 문을 열자 담배 연기가 훅 끼쳤다. 쥬토가 혀를 차며 장갑 낀 손으로 연기를 휘젓는다. 별 소용 없는 행위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보다 잠깐, 이거 지금 피우는 게 아니잖아. 후각이 사람 감각 중 제일 예민하다더니, 그런 감상부터 드는 게 제가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라 이치로가 속으로 헛웃음을 짓는다. 도대체 몇 개비나 피워 댔는지 너구리굴이나 다름없는 내부 안으로,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이치로는 잠깐 숨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