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미 2025-09-22 12:05
요코하마 출장 서비스
困った時は我々にお任せ
ブクロの街を俺らが支えます
安くて、早くて、たくましい、
ハイクオリティー、萬屋ヤマダ♪


본문장난스러운 멜로디가 흐르고 나면 1을 빠르게 네 번 누른다. 그러면 다른 어떤 안내로도 넘어가지 않은 채 전화가 뚝 끊기고, 동시에 제가 있는 곳의 GPS정보가 아이메시지로 넘어간다. 바로 읽음 표시가 뜬 걸 보면 빠르면 한 시간, 늦어도 두 시간 전후면 요로즈야 야마다의 밴이 도착하리라. 좀 더 들어 보고 넘겨도 되겠으나 그놈의 비즈니스적으로 호쾌한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저를 마주치면 으르렁거리기만 하니까. 사마토키는 앞으로 12시간 남짓 제게 허락된 마지막 담배를 입에 물었다. 첫 모금은 깊게, 나머지는 아껴 피울 생각이었으나 늘 그랬듯 잘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묘한, 아오히츠기 사마토키 하나만을 위한 맞춤 출장 서비스가 어떻게 시작되었느냐 하면.



*



“술은 절대로 안 됩니다. 상처 덧나요.”
“아? 그럼 담배는?”
“당연히 안 되죠.”
“…선생, 나한테 죽으라는 거야?”


눈을 부라려 봤자 앞에 앉은 사람의 단단한 얼굴은 변하지 않는다. 더티독의 멤버가 아닌 환자로서 사람을 대하는 진구지 쟈쿠라이에게는 뭘 말해도 절대로 먹히지 않음을 익히 아는 사마토키가 가볍게 혀를 찼다. 일주일, 아니 적어도 삼 일은 참아 보세요. 단호한 음성이 귓전을 때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런 미친, 삼 일이나 니코틴 없이 살라니. 게다가 이 답답한 병원에서 꼼짝없이 누워서 뭘 하란 말인가. 벌써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기분에 관자놀이를 짚자 쟈쿠라이가 다시 한 번 으름장을 놓고는 일어섰다. 그 뒤에서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것은 야마다 이치로다.


“사마토키 씨….”
“넌 어제 퇴원하지 않았냐?”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요.”


A4인지 D4인지 하는 게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다음 남은 것은 총상 두 개다. 하나는 아오히츠기 사마토키의 배에, 다른 하나는 야마다 이치로의 허벅지 께에. 나름대로 밑바닥에 구르면서 살아왔으나 총에 맞는 건 처음인데 과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총알이 뚫고 지나간 자리가 아물 틈도 없이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매달리는 요츠츠지를 뿌리치고서는, 달려나와서 랩배틀을 하고 밥까지 먹었으니 상처가 터지는 건 당연지사였지만 억울한 건 딱 하나다.

이치로 이 자식은 왜 멀쩡한 건데?

한참 어려서 그런 건지, 저보다 다친 것도 나중이고 밥을 먹은 것도 함께였는데 기함할 정도로 빠른 회복력이다. 사마토키의 나이도 당연히 젊은 축에 속했지만—같은 그룹에 쟈쿠라이가 있기도 했고— 역시 십 대는 무시할 수 없는 건가 싶어 입맛이 썼다. 아, 담배 당겨. 상처가 터졌을 때는 말 그대로 눈앞이 새빨개져서 뭘 입에 대고 싶지도 않았건만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아무튼, 야마다 이치로와 나란히 끙끙거리며 2인실을 쓰다가 어린 놈의 자식은 먼저 퇴원했고 이제 저 혼자 병실을 차지한 채 끔찍하게 지겨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이거, 네무 씨한테 받아왔는데요.”
“뭐?”


온통 새하얗고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곳보다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기다리는, 제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으나 그러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 네무가 이유였다. 간병에는 품이 많이 들기도 하고, 가벼운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라서 총에 맞아 절절거리는 걸 보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마음이 쓰렸기 때문에. 그래서 부러 병문안도 안 와도 된다고 했었는데…. 병원 앞까지 와서 전해주고 갔다는 쇼핑백은 꽤 묵직해 보였다. 그 안에서 여분의 옷가지며 찬합 통이며 모둠 과일까지 야무지게 나오는 걸 보고는 사마토키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네무 녀석, 언제 이렇게 커서는.

그리고 다른 쇼핑백에서는, 게임기며 라노벨이랑 만화책, 잡지 같은 게 이치로 손에 잡혀 줄줄이 등장하는 중이다. 좀 전에 받은 감동이 단숨에 날아가는 기분에 사마토키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이건 제가 가져온 거고요, 심심하실까봐서. 병실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묘하게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야마다 이치로를 올려다보던 사마토키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딴 거 볼 것 같냐고…. 그래도 생각해서 챙겨온 게 갸륵하기는 해서 그 말은 지금 당장은 참기로 하고.


“뭐… 고맙다. 이제 가 봐.”
“아니, 저 여기 있을 검다.”
“그건 무슨 소린데.”
“간병하려고요.”


예전에 옆옆옆의 앞집 사는 이웃분이 교통사고 나셨을 때 간병인 역할을 했던 적도 있고요, 아무래도 같은 남자니까 좀 낫지 않겠슴까. 네무 씨는 못 오게 한다고 서운해하던데요. 잽싸게 튀어나오는 목소리가 다급하기까지 해서 사마토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쁠 건 없다. 나쁠 건 없는데…. 그렇지만 석연찮은 건 저 얼굴에 들어찬 게 백 퍼센트 죄책감이다.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총을 맞은 건 야마다 이치로를 감싸서 그런 거라고. 순전히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옆얼굴이 침통하기까지 해서 뭐라고 말을 붙이기도 애매했다. 너 때문이 아니고 그냥 내가 그러고 싶었던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해뒀는데도 성정 자체가 지나칠 만큼 고리타분해서. 그건 아마도 사마토키 스스로가 그랬듯, 누군가에게 제대로 보호받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 터였다. 네무에게만은 그런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이치로를 앞에 두고서도 자동으로 몸이 나간 것 뿐이지만.

저질러 놓고 스스로도 놀라긴 했다. 내가 저놈을 그만큼이나 예뻐했던가? 혼신의 리릭 대신 총까지 대신 맞아줄 만큼.
물론 최근에는 꽤 귀엽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이에 비해서 제법 듬직하다고 생각하고도 있지만….

더 깊게 생각하는 대신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는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무슨 훈련 잘 된 개마냥 즉각 옆에 와서 서는 꼴이 또 볼 만했다. 뭐 드릴까요? 네무가 가져다준 거. 아, 넵. 침대에 딸린 접이식 테이블을 펼치고 또각 소리 나며 찬합을 각 잡아 늘어놓은 후 컵에 물을 따라주는 동작은 절도있기까지 하다. 화룡점정으로 비닐 포장된 나무 젓가락을 정확히 반 갈라 건네는 것에 사마토키는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다친 게 배지 손이냐? 그래도요. 애써 완벽하게 잘린 젓가락을 이치로 손에 쥐여 주고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는 새 것을 꺼내들었다. 너도 먹어라. …다친 사람 밥을 뺏어먹으라고요? 까분다. 일축하자 망설이던 이치로가 느릿느릿 손을 움직였다. 보온 기능이 있는 도시락통에 담긴 음식들은 아직 따끈했고, 늘상 먹이는 보람이 있는 놈이 표고버섯을 슬쩍 구석으로 밀어 두는 걸 보니 웃음이 샜다. 벽만 마주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쁘지 않을지도 하는 생각과 함께.



*



시답잖은 시간이 흘렀다. 그 말은즉슨 사마토키가 담배를 입에 물지 않은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소리다. 야마다 이치로와는 이제 침묵이 어색한 사이는 아니었으므로, 불쾌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둔 채 누워 서로 할 일을 하다가도 바짝 갈증이 일었다. 환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밀어넣어도 다 압수당한 탓에 뭐가 잡힐 리가 없다. 작게 욕을 뇌까리자 옆에서 눈알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탕이라도 사다 드릴까요?”
“뭔 놈의 사탕.”
“담배 때문에 그런 거 아님까?”
“맞긴 한데, 그딴 걸로 만족 못 하거든. 사탕이라면 나도 라무다한테 받은 거 있고. 차라리 담배를 사다주면 모를까.”
“저 미성년자인데요. 그리고 쟈쿠라이 씨가 절대 안 된다고 했거든요…. 저번에 지나가다 보니까 금연 사탕이라는 것도 있던데.”
“입에 넣을까 보냐….”


금연을 할 것도 아니고 지금 잠깐인데, 그냥 신경 꺼라. 신경이 쓰이는 걸 어떡해요…. 말꼬리가 따라오자 사마토키가 귀찮은 듯 혀를 차고는 몸을 일으켰다. 누워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일어나면서 상처가 옷에 쓸리자 닿은 부위가 화끈거렸다. 떫은 것을 삼킨 얼굴로 동작을 멈추자 옆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당장 어깨를 받치며 부축하는 손바닥이 뜨거워 돌아보자 퍽 걱정스러운 표정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거리감을 계산하지 못한 듯 당황스러운 숨소리와 함께 바로 뒷걸음질치는 꼴이란.


“뭔데?”
“어, 어디 가시나 해서.”
“화장실 갈 거거든. 왜, 옆에서 구경이라도 하게?”
“됐…,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요.”
“일일이 따라붙지 말라고. 거동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쟈쿠라이 씨가 원래는 최대한 움직이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 봐라. 너 선생한테 사주받은 거지?”


도와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감시 명목 아니냐, 얼마 받은 거냐고 쏘아붙이자 또 그런 거 아니라고 눈꼬리가 억울해진다. 저는 정말 사마토키 씨가 걱정돼서…! 빨라지는 말을 뒤로하고 병실에 딸린 화장실 안에서 문을 닫자 잠시간 고요해진다. 천천히 거품을 내어 손 안쪽을 구석구석 닦으면서 생각이라는 걸 해 보자면, 저거 아무래도 단단히 꽂힌 것 같다. 적잖은 시간 동안 지켜본 야마다 이치로라는 인물은 제법 고집이 센 부분이 있었다. 제 마음에 찰 때까지 뭔가를 해주기 전까지는 아마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말마따나 여기 처박혀 있을 동안은 수발을 들든 이 몸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든 감내해야겠다고. 아오히츠기 사마토키와 야마다 이치로 사이에 빚이 생기는 건 싫으니까. 의뢰라는 명목으로 사무실을 얻어 주었듯 이번 일에도 사이에 이유 하나 정도는 깔아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대뜸 배에 구멍이 뚫리는 건 이쪽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그래, 그렇게 하자고. 놓인 치약으로 이를 닦고 나오자 다리를 달달 떨며 앉아 있던 이치로가 벌떡 일어섰다. 미친, 벌써 부담스러워. 아니다. 참자. 오른쪽 뱃가죽을 더듬거리자 지나치게 결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마토키 씨, 머리 감겨 드릴까요.”


사마토키가 화장실 안에서 혼자 어떤 결심을 하고 나왔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그냥 관둬 버릴까…. 학을 뗀 얼굴로 바라보자 또 뭐에 꽂혔는지 냅다 팔을 걷어부친다.


“오른손 들 때마다 묘하게 아프신 것 같아서요. 해본 적은 있고, 슬슬 찝찝하지 않을까 해서.”
“아예 목욕 시중까지 들어주지 왜?”
“그, 것도…. 어…, 해본 적은 없지만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요.”
“너 진짜 적당히 못 하겠냐.”


목소리가 아래로 튀었다. 움찔거리다 이내 굳은 어깨가 느릿한 잔상으로 남아 사마토키가 한숨을 쉬었다.


“이치로, 네놈 때문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저 때문이잖아요.”
“나 총 맞으라고 떠밀기라도 했냐? 아니잖아. 그냥 몸이 먼저 나간 거라고 했지. 그딴 식으로 저자세로 굴 거면, ….”


씨발, 핏대 세웠더니 존나 아프네. 식은땀이 맺히는 탓에 사마토키는 이를 사리물고 짝다리를 짚었다. 문제는 앞의 애새끼가 눈치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알았으니까 화내지 마세요,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면. 더 입씨름하기 싫어 사마토키는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알았으니까 네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머리를 감겨주든 목욕을 시키든 옷을 갈아입히든 팔십 먹은 노인 대하듯 부축을 하든 마음이 나아질 때까지 하고, 그러고 나서는 그냥 잊어버리란 소리다.”
“사마토키 씨….”
“새끼가 하여튼, 너는 너무 물러.”


야마다 이치로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말도 잘 듣고, 눈치도 빠르고, 일머리도 있고. 손이 가는 걸 제 선에서 한 번 걸러 먼저 해 둔다거나 힘이 덜 들어가게 옆에서 받쳐 드는 거나 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눈 깜짝할 새 손아귀에 머리채까지 잡히게 된 점에서 정말로 그랬다.

이치로와 사마토키 둘 다에게 너무 낮은 세면대에 고개를 처박자 머리 위로 따끈한 물이 흘렀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온도였다. 괜찮슴까? 어. 대답이 떨어지자 바로 손가락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 한데 적시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목덜미를 잡히자 영 기분이 묘했다. 목을 잡히면 그대로 끝인 이유는 그곳이 너무 연약하기 때문이다. 꺾기도, 조르기도, 아주 잠깐 누르고 있기만 해도 기절할 수도 있는 부위라서. 흰 목덜미 위로 솟은 뼈마디를 가늠하듯 매만지던 손은 더 불온한 감상을 느끼기 전에 떨어졌다.

뭉툭한 손끝이 두피 안쪽을 아프지 않게 문지른다. 어느 정도 머리가 확실하게 젖고 나자 곁에 놓인 라벤더 향 샴푸를 쭉 짜서 손바닥 사이에서 거품을 만든다. 이쪽은 아예 머리칼에 짜서 문지르는 편인데. 단단한 손바닥 사이에서 비눗방울이 터지고 뭉그러지는 걸 곁눈질하다 사마토키는 다시 눈을 감았다. 풍성한 거품이 머리를 뒤덮고, 다시 꼼꼼하게 사이사이를 마사지하고,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시원해서 짧게 숨이 새었다. 손이 멈춘 것은 일순간이다. 왜? …아무것도 아님다. 그러고는 다시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면서 비눗물을 헹궈내는 게, 어디 미용실에서 일한 적도 있나 싶을 만큼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사마토키 씨는 머리카락이 진짜 얇네요.”


그런 말을 내뱉는 것마저 그랬다. 뭔 놈의 감상이, 그렇다고 말하기도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말뽄새다. 네놈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 아뇨, 저는 더 뻣뻣하거든요. 그랬던가? 종종 헝클어트리던 검은 머리칼을 잠깐 떠올리다 보면 이번에는 머리 위로 트리트먼트가 얹혔다. 샴푸와 같은 제품군인데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고작 일주일 남짓 지내며 욕실용품을 사다 채우는 건 아무래도 귀찮으니 그냥 쓰긴 하는데. 너는 이 향 마음에 드냐, 하는 물음에는 어리둥절한 듯 한 템포 느린 답이 돌아온다. 네? 글쎄요, 마음에 들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굳이 따지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닿지는 않았지만 느릿하게 질량이 느껴지는 그림자가 가까워졌다가 물러선다. 개도 아니고, 어디다가 대고 냄새를 맡는 건지.


“확실히 평소 쓰던 게 더 시원한 느낌이라 사마토키 씨랑은 잘 어울리는데요.”
“나 말고 네놈 선호를 물어본 거였는데. 민트랑 라벤더의 차이를 즉각적으로 못 느끼는 놈이랑 이런 대화 해 봐야 뭐하겠냐마는.”
“그냥 마트에서 대용량 할인하는 걸 사다 둬서…. 일하다가 들어갈 땐 비누로 감고 대충 말린 적도 많았고요.”
“비누우?!”


그런 걸 썼다간 머리카락 상한다는 잔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이치로는 눈을 깜빡였다. 은근히 이런 거에 관심이 많은 부분이 귀엽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이 사람도 너무 무르기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옆에 있게 해달라는 걸 밀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라든가. 더 두다간 정말 오래 걸릴 것 같아 후다닥 트리트먼트를 헹구고 나서 수건을 얹었다. 저 남자와는 시원한 쪽이 더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병원에 비치된 시판 샴푸라도 씻고 나오면 같은 향이 나는 게 좋다. 와, 나 진짜 오타쿠 같네. 하지만 반사적으로 나오는 한숨도, 사마토키 씨 목소리가 원체 낮아서 자꾸 이상한 생각이….


“이치로?”
“아, 넵. …잠시만요.”


사마토키가 허리를 일으키자 채 마르지 않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아니, 말려드릴 테니까 앉아서 기다리세요. 왼손은 올려도 아프질 않아서 대충 수건을 얹은 위로 주무르다가, 누가 봐도 거절하고 싶은 얼굴로 얌전히 의자에 앉는다. 역시 무르다니까, 음. 야마다 이치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착실히 환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인 사마토키가 이마를 문질렀다. 젖은 머리가 흘러내려 간지러웠던 까닭이다. 그 새에 마구잡이로 비비는 게 아니라 위아래로 수건을 겹쳐 물기를 제거하고, 드라이기를 세팅하는 손이 야무졌다.

앉은 의자 앞에는 작은 거울이 놓여 있었는데, 바삐 움직이는 연하를 관찰하게 되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눈이 마주치면 조금 머쓱해질지언정 절대 시선을 피하지 않는 건 당연지사고. 어쩐지 평소보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야마다 이치로가 더운 바람으로 뒷머리를 헤집었다. 바람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감이라 딱 좋았다. 나른해져서 눈을 감자 다른 손이 살살 머리칼을 들춘다.


“…이렇게까지 앞머리 내린 건 처음 보는 것 같슴다.”
“그랬나? 이마에 뭐 안 닿는 게 익숙해서.”
“가끔 내려도 좋을 것 같은데요.”
“왜? 취향이냐?”
“네. …….”


손이 또 멈춘다. 툭 던진 농담에 즉답이 돌아올 줄은 몰라서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작은 거울 안으로 비치는 낯에 크게 낭패, 라고 적혀 있는 듯해 그대로 목을 꺾어 위를 쳐다보자 고개를 돌린다. …그런 자세로는 머리를 못 말리는데요….


“그럼 평소엔 취향이 아니었다는 거고?”


하여간, 놀릴 건덕지가 생기면 무엇 하나도 쉽게 넘어가 주지 않는 여섯 살 연상에 야마다 이치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다 못해 라무다와 쟈쿠라이랑 함께 갔던 아타미 여행에서도 온천욕이 끝나자마자 바로 머리를 넘겨 버렸던 탓에 정말로, 이렇게 흐트러진 건 처음인데. 근데 그게 내 앞이라서. 말이 헛나온 것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평소랑 다른 모습이니까…….”


신선해서요, 하고 어물거리는 폼이 딱 바보 같아서 웃음이 샜다. 웃지 말라고요, 사마토키 씨. 남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이벤트인 줄 아냐고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딴 걸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잖은가. 저 사람이 좋아하는 거라곤 담배, 술, 싸움, 그리고 오십만 엔짜리 빈티지 데님 뿐인데.


“오타쿠 새끼.”
“마음대로 부르시든가요….”


조금 벌개진 목덜미를 보며 기분이 좋아진 사마토키가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렸다. 주도권 싸움이라는 게 그렇다.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구는 놈 손에 얌전히 몸을 맡기는 것보단 좀 놀려도 주고, 이겨도 먹고, 그래야 좀 재밌고. 너무 철 든 보호자처럼 굴어서 좀 거북하던 참에 잘 됐다 싶기도 하고. 그것 조금 놀렸다고 열이 오른 건지 소매를 걷어부치고 다시 머리를 말리는 팔뚝에 힘줄이 섰다. 저건 근데 왜 이렇게 몸이 굵을까. 운동으로 다져진 게 아니라 오만 가지 잡일로 키운 거라 그런가…. 생각과 동시에 왼손이 드라이기를 든 팔을 짚었다. 여전히 조금 게면쩍은 듯한 얼굴이 의아한 듯 거울 너머로 제 표정을 살핀다.


“뜨거워요?”
“아니.”


갈라진 팔의 근육을 슬슬 쓰다듬자 꽉 조여드는 게 느껴져 신기했다. 간지러운데요, 하는 말을 가볍게 묵살하자 어쩔 수 없다는 양 다시 손이 움직인다. 뒷머리가 얼추 마르자 이번에는 앞머리 차례인데…. 이치로가 이리저리 뒤쪽에서 자세를 잡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빙 돌아 사마토키의 앞에 섰다. 사내자식들 둘이 하기엔 꽤 낯간지러운 자세인 양 싶다가도 이미 머리까지 감기고 말리고 온갖 지랄을 다 떨어 놓고선 유난이라는 생각도 들어 멀뚱히 바라보자, 이번에는 눈 좀 감아 달라는 호소가 돌아온다.


“새끼, 귀찮게 하긴. 대충 말리지.”
“제 머리도 아닌데 어떻게 그래요. 바람 눈에 닿으면 뜨거울 거고.”


물기가 얼추 말라 가벼워진 뒷머리를 두고 앞머리에까지 바람이 든다. 본래라면 시원하게 뒤로 넘겨 한데 말렸을 텐데, 이마와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온 손가락들이 머리칼을 슬슬 얽으며 빠져나간다. 역시 능숙하단 말이지…. 하기사 이놈은 손이든 입이든 하물며 다른 거든, 몸을 쓰는 건 처음에만 좀 익숙하지 않은 티를 내지 곧장 초짜 티를 벗곤 했다. 일머리도 수완도 좋달까, 그래서 해결사 일을 추천한 거기도 하지만. 상념에 빠진 채로 오 분쯤 시간이 흐르자 바람이 멎었다. 그래서 눈을 떴는데.

갑자기 눈앞이 홱 돌아가더니 바로 앞에 야마다 이치로의 얼굴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거진 마무리하려던 참에 드라이기 선이 의자 다리와 꼬였고, 그래서 잠깐 전원을 껐는데 그 때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눈을 떴고, 뭐에 그렇게 놀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화들짝 놀란 야마다 이치로가 힘을 주면서 사마토키가 뒤로 벌러덩 넘어가버린 흐름이다. 와중에 환자 챙기겠답시고 드라이기를 내던지고 제 왼팔을 사마토키의 등과 바닥 사이에 밀어넣은 걸 칭찬해 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처부위가 어떻게 된 것 같지는 않았어도 끌어안은 것마냥 밀착한 자세가 된 게 불편해서 사마토키가 미간을 구겼다.





“뭐야?”
“윽, 죄송….”
“됐어. 무거우니까 빨리….”

왼팔로 바닥을 짚다가 동작을 멈춘 건 무언가가, 아래쪽에서, 질량을 가지고 닿아 왔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사마토키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시선은 맞닿은 아래로 향한다. 이제 사마토키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야마다 이치로가 어정쩡하게 둘러 안은 팔을 풀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래는 바싹 붙어 있었고, 불행하게도 환자복은 얇았다. 무슨 푸대자루 같은 통짜 바지를 입고 다녀서 겉으로 보기에는 몰라도 이렇게 가까운 채로는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야마다 이치로가 발정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방금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것까지도.

도대체 사람 머리 말려주면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너…….”


머리에 열이 확 올랐다. 허리에서 한 뼘 떨어진 팔이 서서히 앞으로 돌아와서 제 얼굴을 가린다. 가려지기 직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혀라도 씹고 싶은 표정이었다. 뭔, 미친…. 얼굴 가릴 때냐. 아랫도리부터 떼야지.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열기가 옮았는지 점점 생각이라는 걸 할 틈 없이 뇌가 뜨거워진다. 동시에 목이 탔다. 얼굴을 가린 손바닥은 이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치로.”
“…….”
“손 떼.”
“…싫은, ….”


팔찌에 달린 구슬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강제로 잡힌 손이 화끈거렸다. 이치로는 긴장으로 손끝이 식었고 사마토키의 손바닥은 뜨끈했던 탓이다. 손을 갈무리하지도 못한 채 선명한 눈동자가 점점 가까워진다 싶더니 입술이 닿았다. 그러니까, 사마토키가 이치로에게, 입을 맞췄다는 뜻이다. 양쪽 색이 다른 눈이 느릿하게 깜빡였다. 저도 모르는 새 얻어맞아서 환각 내지는 꿈을 꾸는 건 아닌가 하는 표정이다. 갸름한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속이 울렁거렸다.


“지금, 내가, 존나게, 담배가 피고 싶거든.”
“……그래서요?”
“근데 못 하잖아.”


본래도 낮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는 흥분에 젖어 더 낮게 까라진다. 미묘한 리듬으로 끊어 말하는 게 열일곱 살에게는 너무, 버티기 힘들 만큼 섹시했다…. 그 내용만은 당최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 입맞춤까지 받아 아래 사마토키의 허벅지에 닿아 오는 것은 이제 순 흉기에 가까웠다. 뭐 이딴 걸 달고 다니는 거지. 근데 남자 좆끼리 좀 부벼진다고 이렇게 머리가 뜨거워질 수가 있나. 역시 생전 안 하던 금연을 시켜 놔서 어디 한구석이 이상해진 거 아닌가 모르겠다. 왜, 계속 충족되던 게 사라지면 다른 걸로 대체하고 싶은 것처럼. 그러니까 지금 이 행위도 딱 그 정도로 두자고.


“정 이 상황이 네놈 때문이고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책임을 지라고, 남자답게.

대답하기도 전에 입이 막혔다. 타인의 혀가 구강을 파고드는 느낌은 솔직히 말해 섬칫했다. 머리 끝까지 곤두서는 감각에 어물거리던 손등 위로 핏줄이 섰다. 제 멱살을 잡은 사마토키의 손 위를 짚었다가, 옷자락 어딘가를 그러쥐었다가, 다시 사마토키의 등 뒤로 얹혔다. 이 자세 배에 힘 들어가는 거 아닌가, 그러면 아예 눕히는 게 안 낫나, 근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심장이 터져 버릴지도. 아니다, 실제로 터질지도 몰라. 숨이, ….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시점에 입술이 깨물렸다. 떨어진 입술과 입술 새로 선이 늘어진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야마다 이치로의 낯이, 말 그대로 새빨갰다. 보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의 붉기였다.


“집중 안 하네, 이거. 동정 주제에.”
“그게 아니라.”


고작 한 마디 뱉는데 숨이 턱 막혔다. 그만큼 호흡을 참고 있었다는 게 보여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묘하게 자존심 상하면서도 구김 없이 웃어버리는 얼굴이, 흘러내린 앞머리가, 낮게 터지는 웃음소리까지도 예뻐서 아무래도 상관 없어진다. 어떻게 사람이 환자복을 입고도 이렇게 반짝거릴 수가 있지.


“일으켜 세워 봐.”
“네?”
“빨리.”


아, 끝인가. 역시 내가 너무 서툴러서…. 여성향 라노벨에서 스쳐가듯 본 혀로 체리 꼭지를 묶을 수 있는 남주인공 도식에 대해 생각하며 이치로는 묘하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마토키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것을 붙들고 가볍게 일어나며 사마토키는 이놈의 낯이 왜 어두워졌는지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밀어버리기를 선택했다. 병원 침대 위에. 순식간의 일이었으므로 중심을 잃은 이치로가 시트 위로 걸터 앉았다. 뒤로 가. 네…? 너 아까부터 네, 만 하는 거 알고 있냐? 바보도 아니고. 벽 쪽으로 가라고. 빠릿한 놈이 얼이 빠져서 무릎걸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묘하게 귀여워 보였다.

침대 헤드에 등을 붙이고 앉자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그 위를 가뿐히 타고 넘었다. 그리고는 그 앞에 마주 앉았는데, 이리저리 각을 재다 혀를 차고 아예 무릎 위로 올라 앉자 야마다 이치로는 아예 허벅지를 찌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만약 지금 저 남자가 평소 입고 다니는 것처럼 조이는 청바지 같은 걸 입고 있었다면 죽었겠지.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바지를 벗어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를 악물자 사마토키가 다시금 웃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치로가 입술을 댔다. 사마토키가 한 것처럼 혀를 넣고 비빌 깜냥은 아직 못 되어서 입술 옆에, 뺨에, 관자놀이에, 목덜미에…. 쪼듯이 떨어지는 버드키스에 웃음이 멎는다. 애새끼가 귀여운 짓을.


“너 키스도 안 해 봤지.”
“…그건.”


잠깐 고민한 것은, 그게 뽀뽀인지 키스인지 헷갈렸기 때문이고…. 또 사마토키가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도 키스로 치지 않을 가능성과 아닌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점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토키 본인은 술에 물 탄 듯 다음날이 되면 없던 일처럼 넘겨 버리지만 종종, 술에 떡이 되면 야마다 이치로를 붙잡고 귀여운 새끼니 뭐니 하면서 입술을 부벼 왔기에. 그래서 야마다 이치로의 첫키스는 딸기맛도 레몬맛도 아닌, 담배 맛에 향수와 온갖 술에 찌든 향과 함께였다. 으레 제 또래 남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한참 달랐다는 소리다. 그게 진심으로 싫지 않았을 때부터 뭔가 잘못됐음을 느껴야 했는데. 들여다보지도 않던 BL코너를 힐끔거리기 시작할 때부터 망한 걸까…. 하지만 지금의 사마토키는 환자일 뿐 취중이 아닌 제정신이다. 이게 고작 담배 몇 시간 못 핀 정도의 금단 증세 때문이라고 한다면 억울하다 못해 울고 싶어질 것 같았다.


“뭐야, 그 반응. 해 봤다고?”
“아뇨…….”


인상을 구겼던 얼굴이 풀어졌다. 열일곱의 첫키스를 가져서 뭐 어디에다 쓰겠냐마는 중고보다는 신품이 낫지 않겠는가. 실상 아오히츠기 사마토키 본인도 남자와는 처음이지만. 잘 들어라, 애송이. 숨은 입이 아니라 코로 쉬는 거다. 그게 신호라도 된 마냥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중간에 한 번 앞니가 부딪히자 사마토키에게 뒷머리가 뜯길 뻔했지만, 그 실수를 제하고는 제법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과연 야마다 이치로는 배움이 빨랐으므로. 그따위로 어마무시한 리릭을 뱉는 놈이 혀를 못 쓰는 건 그것대로 웃긴 일이기도 하고.

눈치를 보다가 슬슬 치열을 훑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놈의 혀가 달았다. 하긴 내내 콜라를 달고 사는 놈이니 달 만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입에도 대지 않을 맛인데 나쁘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산소가 부족한 탓일지도 몰랐다. 가만 두니까 입 안을 죄 빨아먹을 기세로 매달리는데, 꼭 안달이라도 난 개처럼 뜨거운 손이 뒷머리를 파고들었다가 제 허벅지를 쥐었다가 이번에는 피어싱 위를 더듬고 있었다. 대체된 쾌락에 담배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아, 시발, 이거 버릇 될 것 같은데…. 흐려진 이성 가운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여전히 건재한 것이 제 허벅지에 닿아 있음이 느껴져 그 위로 손을 얹는다. 그러자 야마다 이치로의 몸이 말 그대로 퍼득거렸다.


“사, 사마토키 씨!”
“왜. 하던 거 마저 하지 않고.”
“거긴, 그, 제, 제….”
“꺼내 봐.”
“…네?”
“좆 꺼내 보라고.”


같은 남자니까 당연히 중심에 달린 물건은 똑같을 거고, 이 미쳐버린 생리현상도 이해하고 있을 거고, 그런데 왜 이 남자의 입술 사이에서 좆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게 이토록 야한 걸까. 평소에 말투가 예쁜 타입이면 몰라도 늘 한결같이 더러운 사람인데도. 이쯤 되니까 더 우물쭈물할 여유도 없어서 군말 없이 손을 내려 바지 버클을 풀었다. 비록 손이 떨려 마무리는 사마토키의 몫이었지만. (이 때 자칫하면 갈 뻔했다.) 병원 특유의 흐릿한 형광등 아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남자의 뺨이 조금 붉었다. 술을 진탕 마신 것만큼은 아니고, 딱 숨이 찬 만큼이었지만 그 위로 나풀거리는 속눈썹의 그림자가 또 묘해서…. 시선을 고정한 채 아래로 손을 헤집자 브리프 위로 사특한 것이 튀어나왔다. 미친 놈 아냐 이거,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헛웃음이 섞였다.


“이런 걸 달고 동정이라고?”
“무슨 상관인데요….”


그보다 이런 거라니 무슨 뜻인데. 살면서 남자에게 제 물건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받을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는데, 그 평가가 심지어 신경 쓰인다니. 그 와중에도 꽂히는 시선에 제 중심은 더욱 단단해지는 중이었다. 딱 울고 싶은 기분이라 입술을 깨물자 또 가차없이 손이 뻗어 온다. 타인의 손이 중심에 닿는 감각이 아득했다. 사마토키의 손가락은 길고 하얗고 예뻤는데, 그것이 잡고 있는 건 송구스러울 정도로 붉고 끈적끈적하고 더러웠다…. 그런데 그 대비가 시각적으로 너무 야해서. 이제 그만해 줬으면 하는 마음과 무언가를 더 기대하게 되는 마음이 서로 머리채를 잡았다. 그 손이 위아래로 흔들렸을 때는 그런 감상조차 날아갔지만.

잇새로 비명을 씹어 삼켰다. 그러니까 이건 그거다. 자기위로행위를, 남이 대신 해주는 거. 그러면 이제 자위가 아니지 않나 싶기는 한데 아무튼 그런 이벤트였다. 당연하지만 제 손으로 아래를 쥐고 흔드는 것과 남이 쥐고 흔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고, 사마토키의 손속이 거칠어 허벅지가 위로 튀었다. 혀를 차고는 선단에 흐른 프리컴을 손바닥에 문질러 다시 위아래로 흔드는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버틸 재간이 없다. 절정은 순식간이었다. 절망스러운 것은 그 누구도 그렇게까지 갑작스러운 사정을 예상치 못해 정액이 오만 데로 튀었다는 거다. 여섯 살 연상의 서늘하게 예쁜 얼굴 위로도.

3초 정도—야마다 이치로가 느끼기에는 30분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간신히 움직여 침대 옆 협탁의 티슈를 여러 장 뽑아든다. 그대로 사마토키의 뺨을 훔치는 손은 이제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는 중이다. 왼쪽 눈썹만 천천히 위로 솟는 것을 황망히 바라보며 이치로가 진짜 죄송합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숫제 울 것처럼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만큼이나 사정한 아랫도리는 전혀 가라앉지 않은 게 꼭 시트콤 같았다. 그런데 같은 사내자식 정액을 뒤집어쓰고, 남의 자지를 손에 쥐고 흔들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게 더 문제다. 이건 총을 대신 맞아준 것과 같은 맥락인가. 더 깊이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니코틴이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건….


“미친…, 안 한 지 얼마나 된 거냐.”


사마토키가 전동 가구마냥 떨리는 손에서 구겨진 휴지를 뺏어 대충 얼굴 위를 닦고 나서는 뒤로 던졌다. 그리고는 이치로가 말릴 새도 없이 환자복 바지를 대강 말아 내린다. 와, 제발 좀. 검은 드로즈 앞이 번들거리는 게 이상했다. 저게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왜냐하면, 그러면, 사마토키 씨도 흥분했다는 소리잖아. 예의 흰 손이 제 아래를 뒤적여 반쯤 선 것을 꺼냈다. 남자의 성질머리답지 않게 곧은 성기는 색이 연했다. 열일곱의 순정을 걸고 맹세하자면 사마토키의 아래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 같은 건 안 해봤는데, 정말로 그 얼굴만큼이나 좆까지 예뻤다.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흐름이지. 섹스인가, 아닌가. 넣지 않았으니 노카운트인가.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말한 책임이란 무엇인가.

대체 왜인지는 몰라도 아랫도리를 시원하게 깐 사마토키가 재차 무릎 위로 올라타 키스하는 동안 이치로의 성기는 다시 아랫배까지 올라붙었다. 마르고 길쭉한 몸이 죄 단단했으나 도리어 그것이 흥분돼서 참을 수 없었다. 사마토키 씨…, 그새 익숙해져서는 이제 숨을 자유로이 쉴 수 있게 된 야마다 이치로는 입술이 잠깐 떨어지는 새를 못 참고 들러붙었다. 이치로의 것이 사마토키의 아랫배 어드메를 문지르다가, 사마토키의 성기와 부딪혀 미끄러진다. 같이 쥐고 흔드는 손아귀가 빠듯하다고 느낄 때쯤 단단한 손이 그 위를 덮었다. 그게 제법 기분이 좋았다. 아래도 위도 질척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입술을 핥고 혀를 빨다 갈급한 눈이 마주친다.

야마다 이치로가 저를 관찰하고 있다. 하나하나 낱낱이 뜯어보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제가 기분이 좋은지, 느끼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흣…, 시발, 잠깐만. 목을 비틀어 내내 물고 빤 탓에 묘하게 부은 입술을 떼어내자 개새끼마냥 곧바로 고개가 따라온다. 있어 보라고, 좀. 이치로! 목 안쪽에서 탁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었다.


“네, 사마토키 씨….”


이름 부르는 거 좋은데 더 불러 주면 안 되나…. 키스를 못 하게 하니까 어리광 섞인 말을 내뱉으면서 귀를 핥는다. 피어싱이 꿰뚫은 자국이 축축해지는 감각이 오싹했다. 아니, 진짜 좀. 뺨 위로, 드러난 목덜미 위로 입질이라도 하듯 잘근거리는 입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걷어부친 환자복 소매 아래로 핏줄이 섰다. 한데 모아 흔들던 성기 위로도 힘이 들어가서, 동시에 파정하면서 사마토키는 비로소 왜 이놈을 떨어트려야 했는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니 씨발, 상처 터졌나 본데….



*



그래서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가. 뱃가죽을 부여잡고 모로 드러누운 사마토키를 보고 새하얗게 질린 야마다 이치로가 아주 최소한의 수습만 하고 진구지 쟈쿠라이에게 삐삐를 쳤다. 사람 얼굴에서 그렇게 빨리 색소가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건 그 때 처음 알았다. 결국 당초의 입원 계획보다도 더 병원 신세를 져야 했으나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남에게 말 못 할 버릇이 든 건 그 때가 기점이었다. 담배가 떨어졌거나 네무의 잔소리가 심해져 좀 자제해야 할 날이 있으면 일단 뒷덜미를 잡아다 입술을 부비고, 그러다 아랫도리도 부비고. 입이 심심하다고 사탕을 물고 싶지는 않지만 키스는 썩 나쁘지 않았으므로 더티독 때는 야마다 이치로와 시종일관 그런 행위를 했다.

더티독이 와해된 이후에는 뚝 끊겼었지만…. 언젠가 사마토키가 조직의 일에 휘말려 사경을 해맸을 때 야마다 이치로가 와서 쥐여준 게 직통 번호로 통하는 거였다. 준다는데 안 받을 이유도 없어서 종종 애용하는 서비스는 당연히 비정기적이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게 삼 개월 전이었던가. 사마토키가 반강제적으로 금연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개가 있었는데 그 삼 개월 전에는.


“…사마토키!”


무언가를 더 떠올릴 새도 없이 화난 걸음이 성큼성큼 바닥을 찍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예상보다 한참 이른 등장에 사마토키가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고 재떨이에 남은 꽁초를 눌렀다. 현관에서 이어지는 복도를 순식간에 통과한 얼굴이 마라톤이라도 한 사람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씨 붙이라고 했지, 애송이. 왜 벌써 온 거야?”
“근처에 볼일이 있었어. …이번엔 뭔데? 칼이라도 맞았어? 수술해야 돼?”


직업이 야쿠자인 것치곤 막상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도, 통과의례처럼 손바닥이 뺨을 스치고 몸을 매만졌다. 늘상 입고 다니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다 뜯어낼 것처럼 풀러내는 손속에 사마토키의 손바닥이 매섭게 손등을 후린다. 이치로가 잠깐 멈칫한 사이 스스로 남은 단추를 풀고 옆 소파에 대충 던져 둔 사마토키가 양팔을 들었다. 남자의 몸은 늘 그렇듯 깨끗하다. 보기 좋은 짜임새의 근육 위로 바람구멍이 난 자국만 빼면. 야마다 이치로의 허벅지에 있는 것과 같은 흉인데, 피부가 새하얀 탓인지 더 눈에 띄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볼 때마다 이치로의 눈매가 아래로 쳐졌다. 지금도.

그런 직업인데도 사마토키의 몸에 흉터는 잘 생기지 않았다. H력의 영향도 있겠지만, 아직도 뒷세계에 발을 담근 사람들은 무기를 휘두르고는 한다던데. 그가 야마다 이치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는 증거 하나만이 몸에 남아 있는 게 야했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저가 역겨우면서도, 행위가 끝난 뒤 까무룩 잠든 뒤에는 사마토키의 흉터를 오래오래 쓰다듬곤 했다.


“또 청승 부릴 거면 그냥 돌아가든가.”
“아니, …. 아냐. 그래서 뭔데?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건강 검진.”
“건강, 뭐? ……하아?”
“별로 안 하고 싶은데 말이지, 딱 열두 시간만이라도 금연에 금주에 시키는 게 존나게 많아서.”


쥬토가 달달 볶는 탓에 하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얼굴이 태연했다.


“당신은 진짜….”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듯 달싹이던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렀다. 됐어, 어쨌든 멀쩡하다 이거지. 목덜미는 땀에 젖었고 안 그래도 빗질 덜 한 개처럼 푸슬거리는 머리칼이 붕 뜬 폼을 보아하니 어디서 뛰어온 것 같은 꼴이라 신경이 느슨해진다. 차를 내버려 두고 숨이 턱끝까지 찰 만큼 내달려 십오 분만에 삼십 분 걸리는 거리를 주파한 것은 사실이다. 영영 아이메시지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 핑계로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늘 교차했다. 그래도 전화를 걸고 번호를 누를 만한 정신이 있다면 죽을 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어쨌든 위험한 짓에 휘말린 다음의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요는 이치로가 늘 사마토키를 걱정하면서 동시에 욕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을 기대할 만큼.

그러니까, 이치로. 소파 옆자리를 두드리자 터덜터덜 걸어와 널브러진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듯 눈만 옆으로 향한 이치로의 후드 사이를 사마토키의 손이 끌어당겼다. 잠깐 멈칫거리던 몸이 금세 팔을 얽는다. 장장 삼 개월만의 키스는 길고 질척거렸다. 이제는 혀로 체리 꼭지를 묶는 건 껌인 야마다 이치로가(참고로 더티독 때 졸업했다) 사마토키는 종종 낯설었지만, 못하는 것보다는 한참 낫지 않나 하는 양가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 새끼 이거 뭘 상대로 연습한 거야. 다른 사람 만날 깜냥은 못 되는 것 같은데.

빨갛고 파란 자켓을 벗겨 제 와이셔츠 있는 데로 처박은 사마토키가 이치로의 입술을 깨물었다. 이 년 전에도 발정해 놓고 여즉 죄책감을 느끼다니. 근데 지금도 서 있잖아.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넣어 몸을 통째로 끌어안는 데에는 잠깐 얌전해졌다가, 아래를 찌르는 감각에 또 웃음이 샌다. 등을 더듬는 손은 이제 명백한 함의를 담고 있었고 가슴께에 처박은 고개는 유두를 핥아 올렸다. 흐읏, 하고 목을 젖히자 다른 쪽을 짧은 손톱으로 꾹 누른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더 민감한 것 같은데.”
“…귀엽지가 않다니까.”
“뭔 소린데?”
“이 년 전만 해도 사마토키 씨, 사마토키 씨 하면서 자지도 못 꺼냈던 주제에.”
“그 때 얘기는 왜 해?”


괘씸하다는 듯 가슴에 대고 이를 세우는 탓에 허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이 귀엽질 않다는 거다. 아오히츠기 사마토키의 버릇에 어울려주는 동안 야마다 이치로의 성장은 가히 빛날 정도였다. 단계를 밟는 것도 아니고 몇 계단씩 뛰어오르면서 능숙해진 행위에 가끔은 사마토키가 먼저 도망치고 싶을 만큼이나. 따지고 보면 자초한 것은 본인이래도 가끔은 억울할 만큼 열일곱의 어리숙한 얼굴이 보고 싶어지는 건 정말로 욕심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분명 소파에 앉아 있었던 자세는 흘러내렸고 꼭 맞는 청바지가 아래로 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언제 푸른 건지도 모를 만큼 매끄러운 진행이다. 천장의 무늬가 저런 모양이었나, 올려다보자 가슴을 빨던 입이 쪽 소리를 내며 아래로 도장을 찍는다.

하반신까지 내려가기 전에 잠깐 몸을 일으켜 제 손으로 후드티까지 벗어던지는 걸 눈으로 훑다가 다리를 들어 놈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잠깐, 하는 사이 몸 위로 체중이 쏟아졌다. 요코하마의 거리를 헤집고 뛰어온 탓에 몸에 묻은 바닷바람 냄새도, 닿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차는 어디다 버려두고 왔어?”
“그러니까 근처에…. 지금 그게 중요해?”
“네놈 지갑 사정 걱정해주고 있잖아. 요코하마의 불법 주차 비용은 제법 비싸니까.”
“의뢰인이 내던가.”
“일은 얼마나 빼 뒀는데?”
“…이틀. 일단은.”
“이번엔 열두 시간만 참으면 되는데 어쩌나, 우리 야마다 이치로 군.”


애 취급 하지 말라고. 툴툴거리며 사마토키의 어깨를 갉작거리는 통에 발뒤꿈치로 허리께를 대충 차 주고는 협탁 안을 더듬거려 콘돔을 꺼냈다.


“아무튼, 자고 일어나면 건강 검진을 해야 하거든.”
“어디부터 어디까지 하는데.”
“그건 모르겠고, 예전처럼 부대끼다가 뱃가죽이 터질 일은 없다는 소리잖냐.”


못 알아들어? 안에 넣어도 된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덧붙이곤 아오히츠기 사마토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이 좋아서, 그것만은 과거와 하나도 바뀌지 않아서 야마다 이치로가 콘돔 포장지를 찢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검진을 한다는데 술담배는 고사하고 격렬한 섹스는 괜찮은가, 하는 생각은 잠깐 미루어 두기로 하고. …열두 시간이라고 했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스케줄표를 정리하던 요로즈야 야마다의 대표가 사마토키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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